작성자: 서울 중위권 대학/ 어문계열(주전공), 사학(부전공)
1. 준비과정
딱히 준비과정은 없었습니다. 기자 준비의 필수 코스라 할 수 있는 스터디도 두 번 밖에 해보지 않았고, 그 두 번을 합한 기간도 한달이 채 되지 않습니다. 아카데미는 당연히 다녀본 적이 없고 (한터?) 주변 사람들에게 글을 첨삭 받아 본 적도 거의 없습니다. 도서관이나 시청각에서 혼자 공부했습니다.
그저 많이 읽었습니다. 3년 여간 경제신문을 매일 정독했고, 역사와 경제사 전반에 관심이 많아 관련 서적을 꾸준히 탐독했습니다. 하루 일과는 단순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즐거운 마음으로 4시간 가량 경제신문을 읽고 (문화, 스포츠면 제외 모든 기사 다 읽었습니다.) 기사에서 중요한 대목이나 경제 관련 내용을 노트에 정리했습니다. 깊이 있는 칼럼이나 사설은 거진 필사 수준으로 노트에 기록해 두었습니다. 신문을 읽고 난 후엔 역사 관련 서적을 읽었습니다. 일주일에서 10일 정도 기간을 잡고 책을 두 권 정도 골라, 매일 각각 한 챕터씩 진도를 나갔습니다. (대학교 2,3학년 시절에는 서양사 전체를 훑는 책을, 올 초부터는 경제사 관련 책을 주로 읽었습니다.) 신문과 역사 서적을 통틀어 하루 8~9시간 정도는 무언가를 '읽고' 있었던 셈입니다.
글은 삘 받을 때만 썼습니다. 의무적으로 쓰진 않았습니다. 신문을 읽다 사설이나 칼럼의 논지가 맘에 들지 않아 이에 대해 반박하고 싶을 때나, 주요 이슈에 대한 생각이 불현듯 떠오를 때 연습장에 끄적거리곤 했습니다. 퇴고의 과정은 없었으나 그래도 꾸준히는 쓴 것 같습니다. 독후감을 따로 쓰지는 않았지만 책의 논지를 현재의 상황과 어떤 식으로든 연계시켜보고자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예컨대, 갤브레이스의 책을 읽고 현 한국 경제의 '통념'은 무엇일까 생각해본 후 이를 하나의 글로 완성시켜 보는 식입니다.
목표는 처음부터 경제신문으로 잡았습니다. 경제라는 잣대로 세상과 역사를 해석하고 풀어내는 일에 크게 흥미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다수 언론사 지망생들이 선망하는 KBS, 조중동, 한겨레, 경향 등 종합일간지보다 매일경제, 한국경제, 서울경제, 머니투데이와 같은 경제 신문이 더 강하게 끌렸습니다. 비교우위도 있고.
경제에 대한 열정을 어필할 만한 징표가 필요했습니다. 가장 가고 싶은 곳이 매일경제였기에, 매경TEST에서 좋은 성적을 받으면 유리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여름방학 약 한 달 동안 미시, 거시경제학을 공부했습니다. 경제 신문을 오랜 기간 읽었기에 시사 부분은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고, CPA 경제학 강의를 들으며 조금 '오바'해서 공부한 보람이 있었는지 이론 문제도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매경 TEST와 TESAT 모두 나름 좋은 성적을 받았습니다.
2. 서류
제 스펙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전공 영문 / 부전공 사학
학점 3.8
토익 955
매경 TEST 최우수상 수상(최우수 등급) / TESAT 1급
해외연수경험 없음 (아직 비행기도 못 타봄)
대외활동 및 인턴경험 전무
서류 통과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자소서를 공들여 쓰는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 참고로 신문사만 썼습니다. (SBS, MBC 안 씀)
3. 필기
3.1 매일경제 필기
매경 사옥 대강당에서 180명 가량이 필기시험을 봤습니다. 시험은 1교시 국어/논술 2교시 매경TEST 3교시 영어 4교시 상식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언론사 필기 시험이 처음이라 무척 떨렸습니다.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손에 땀이 흥건.
1교시에는 70분 내에 국어/한자 문제를 풀고 글 한 편을 완성해야 했습니다. 시간이 무척이나 촉박했습니다. 논술은 (1. 양적완화 축소가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 2. 창조경제의 정의, 그리고 이를 실현시킬 방안을 서술) 중 하나를 골라 자유분량으로 서술하는 것이었습니다. 국어 문제도 만만치 않았기에 논술을 오래 붙들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30~40분 내에 끝내야 했습니다. 양적완화 문제를 쓰기로 결심하고 개요도 없이 그냥 무작정 써내려 갔습니다. 3분의 1 정도 쓰다가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답안지를 바꿨습니다. 시간이 얼마 없었습니다. '유동성 파티가 끝나간다'는 첫 문장을 시작으로 막힘 없이 그대로 쭈욱 휘갈겨 나갔습니다. 글의 짜임이나 내용 모두 맘에 들었습니다.
국어와 한자는 그야말로 망했습니다. 맞춤법, 문법, 한자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푼게 없었습니다. (한자는 그야말로 백지) 4교시 상식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객관식 문제의 절반 가량을 찍었습니다. 언론사 상식 시험의 위엄(?)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시험이 끝나고 근처 편의점에서 매경 사옥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담배만 태웠습니다. 국어나 상식 때문에 떨어질 것이란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문세 가로수 그늘 아래서면을 들으며 집에 오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속으로 내년을 기약했습니다. 휴
3.2 서울경제 필기
인창고등학교에서 필기시험을 봤습니다. 1교시 상식은 까다롭지도 쉽지도 않은 수준이었습니다. 모두 다 약술형이었는데 아무래도 경제 신문이다보니 경제 관련 용어들이 많았습니다. (뿌리산업, 1TEU, 소프트 패치, 아베노믹스, 시퀘스터, CEPA 등) 뒤에 한자 문제도 있었는데 깔끔하게 포기했습니다. 여백의 미가 자욱한 다른 분들의 답안지를 보며 이번 상식 시험은 평타는 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교시는 논술입니다. 주어진 논제 두 가지 중 하나를 골라 1시간 동안 자유 분량의 글을 쓰면 됩니다. (대체적으로 1200자 ~ 1600자) 이번 논제는 1. 내가 만일 편집국장이 된다면 2. 뉴미디어 시대 언론사의 대응 방안과 역할이었습니다. 논제를 보는 순간 그야말로 멘붕. 경제 관련 논제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30분 동안 갈팡질팡하다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겠다 싶어 무작정 1번 논제에 관한 글을 써내려 갔습니다. 좌,우 간 극심한 대립 속에 그야말로 표류하고 있는 한국사회 그리고 한국경제의 현실을 언급하고, 이와 같은 정치적 양극화의 구조를 고착화시키고 있는 기성 언론의 행태를 비판하고, 마지막으로 내가 만일 편집 국장이 된다면 우리 언론사가 균형의 중추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그리고 성장과 복지의 이분법적 구조에서 벗어나 성장이 복지를 보장하고 복지가 성장을 촉진하는 제3의 길을 우리 사회에 제시하겠다는 식으로 글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글이 영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시험을 보고 나오는 길에 제 자신에게 극도의 환멸감을 느꼈습니다. 정처없이 종로 바닥을 헤매고 돌아 다녔습니다.
3.3 동아일보 필기
편안한 마음으로 봤습니다. 1교시에는 논술을 2교시에는 작문을 봤습니다. 시간은 1시간 30분 씩이었습니다.
논술 주제는 '공짜 점심의 비용'이었습니다. 90분의 시간적 여유를 만끽하며 느긋하게 써내려 갔습니다.
작문 주제는 '화장' 이었습니다. 얼굴에 덧칠하는 그 화장.
작문은 처음 써봤습니다. 어떤 글을 써도 결국엔 논술이 되고 마는 제 글쓰기 실력의 한계를 느꼈습니다. 작문을 따로 준비하기보다는 작문 시험을 보지 않는 언론사를 노려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상대로 필기 탈락.
3.4 서울신문 필기
역시 편안한 마음으로 봤습니다. 1교시에는 상식 시험을, 2교시에는 논술 시험을 봤습니다.
상식 시험은 말 그대로 헬이었습니다. 주관식에 아는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카파이즘, 카피레프트 등. 다 처음 들어봤습니다. 나름 나 정도면 박학다식한 편 아닌가 생각하며 살아왔는데.......수학 문제도 있었습니다. 열심히 풀었습니다. 집에 가고 싶었습니다.
2교시 논술 시험에는 '현 동아시아를 둘러싼 미-중간 양극 체제를 병자호란 즈음의 정세와 비교 분석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라(?)'는 논제가 나왔습니다. 동아시아 정세, 병자호란 등 모두 자신있는 분야였기에 담담하게 논지를 펼쳐 나갔습니다. 올해 필기 중 가장 웰-메이드한 글이 완성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조건 붙겠구나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떨어졌습니다.ㅜㅜㅜ 떨어진 이유는 잘 모르겠네요.
4. 면접
4.1 매일경제 면접
필기가 붙을 줄이야. 최종에는 30명 가량이 남았습니다.
매일경제 채용 전형은 타 언론사와 달리 실무평가가 없었습니다. 필기 이후 바로 임원 면접입니다.
5명이 한 조를 이뤄 면접실에 들어가니 장대환 회장, 편집국장, 그리고 정체 모를 젊은 면접관, 이 세 분이 앉아 계셨습니다. 면접은 평이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질문은 주로 시사 쪽이었습니다.
생애 첫 면접이었던 탓일까. 너무 긴장했습니다.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부동산 대책이나 정부의 시장 개입 등 나름 평소에 정리를 해 둔 주제였음에도 아는 바의 20%도 대답하지 못 했습니다.
합격자 발표 때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으나 역시 예상했던 대로 탈!
매경 떨어지고 한달 정도 정신 못 차렸습니다. 수능 망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4.2 서울경제 면접
필기가 붙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필기 합격자 공지 페이지를 한 100번 정도 들락날락한 것 같습니다. 수험번호도 몇 번이나 확인해 봤습니다.
매일경제와 마찬가지로 서울경제도 실무 평가가 없었습니다. 필기 합격자는 바로 최종 면접을 보는 셈입니다. 최종에는 20명이 남았고, 실무진 면접과 임원 면접 두 차례 면접이 진행되었습니다. 실무진 면접에서는 3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기자 세 분이 들어오셔서 주제를 하나 던져 주십니다. 지원자들은 이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피력하면 됩니다. 제게는 '동반성장'이라는 주제가 주어졌습니다. 무척 긴장한 탓에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어쩌나 저쩌나 망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임원 면접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됐습니다. 가운데 사장님이 앉아 계시고, 양 측에 논설위원이나 편집국장으로 추정되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받았던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어라 생각하나?
2. 지원자의 인생에서 돈이 중요한가?
3. 주량은 얼마나 되나?
4. 운동 좋아하나? 축구?
5. 서울경제신문 기사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거?
6. 기자를 꿈꾸게 된 구체적인 계기가 있다면?
7. 알바 많이 한 이유
8. 경제사에 관심이 많다고 했는데, 최근에 읽은 책은?
실무진 면접을 망했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어차피 떨어질거 하고 싶은 말이나 다 하고 가자는 오기(?)가 생겼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우리 아부지한테 얘기하듯 차분하게 대답했습니다. 최근에 읽는 책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킨들버그의 경제 강대국 흥망사 책을 거론하며 역사와 경제에 대한 제 열정을 어필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임원 면접은 나름 느낌이 좋았습니다.
5. 서울경제 합격
지난주 수요일에 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저 얼떨떨 했습니다.
6. 마치며
책을 많이 읽으시길 바랍니다. 더 많은 책을 읽어두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입니다. 게을렀던 탓입니다. 지금 당장은 가시적인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겠지만 다 쌓이고 쌓이는 듯 합니다.
신문도 대강 읽지 마세요. 기자를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최대한 꼼꼼하게 읽으시길 바랍니다. 노트에 차곡차곡 정리해두면 엄청난 자료가 됩니다. 노트 자료 6개월치 읽어보시면 압니다. (특히 경제)
많이 써보시길 바랍니다. 다만 글쓰기에 너무 매몰되지는 마세요. 스터디를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대다수 준비생 분들의 글이 너무나도 천편일률적이라는 것입니다. 뻔한 논지, 비슷비슷한 구성. 계속 쓰다보면 문장력은 분명 좋아지겠지만 글의 깊이는 제자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이든 균형이 중요합니다.
언제나 기본이 제일 중요한 것 같습니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해보고, 많이 써보시길 바랍니다. 저 역시 이 기본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해 후회막심합니다.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성과에 집착하지 말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기본을 다지는데 최선을 다하시길 바랍니다. 저 또한 노력하겠습니다.